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앤드루 존슨 (문단 편집) ===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=== 1808년에 [[노스캐롤라이나]]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. 13살때 양복점에서 일을 배우고 애인으로부터 글쓰기를 배워 독학으로 학문을 익히고 정계에 진출하여 연방 하원의원(1843~1853), [[테네시]] [[주지사]][* 18대(1853~1857), 20대(1862~1865) 두차례나 지냈다. 특히 20대 주지사로서는 [[1861년]] 벌어진 [[남북전쟁]]의 전장에서 3년간 군정 주지사(military governor)를 맡았는데, 이 공로로 주지사에서 물러난 뒤 바로 부통령이 되고 또 뒤로 대통령이 된 것.], 연방 상원의원(테네시, 1857~1862) 등을 거치면서 점차 이름이 알려졌다. 1860년 링컨의 당선 이후 남부가 차례로 연방을 탈퇴했지만 그는 연방에 남아있었다. 왜 그랬는가 하면 존슨 본인은 노예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. 실제로 그는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연방 탈퇴에 반대했다.[* 때문에 남북전쟁 시기 남부 출신으로서 연방 상원에 남은 '유일한' 의원이 되었다.] 이로 인해 북부에서는 찬양받았지만 남부에서는 배신자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의 출신주인 노스캐롤라이나와 정치적 기반이나 다름없던 테네시가 모두 연방에서 탈퇴한 걸 생각해보면... 결국 이것이 뒷날 탄핵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. 1864년 대선에서 [[공화당(미국)|공화당]]은 국가연합당(National Union Party)으로 잠시 당명을 바꾸고 자신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. 또한 링컨 대통령 또한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겠다는 의지에서 민주당 소속이었던 그에게 손을 내민다. 그 당시 북부에는 민주당의 위세가 약한 편이었다. 왜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민주당원은 남부를 지지했기 때문. 이 사례는 아직까지도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의 정당이 다른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.[* 대통령과 부통령의 정당이 달랐던 사례는 2대 대통령 [[존 애덤스]] 때의 부통령 [[토마스 제퍼슨]]도 있다. 그러나 이 때는 부통령 후보가 따로 없이 대통령 선거에서 2등을 한 자가 부통령이 되었다.] 어찌되었건 그는 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시작부터 영 좋지 않았다. 본인으로서도 어중간한 포지션에 있기도 하고 부담감도 있고 해서 긴장을 풀기 위해 부통령 취임식장에 [[위스키]]를 마시고 입장하게 된다. 결국 이로 인해 주정뱅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. 그를 부통령으로 세운 링컨이 적극적으로 그를 감싸주었지만... '''[[링컨 대통령 암살사건|불과 1달만에 링컨이 포드 극장에서 저격당한다]]'''. 다음날 링컨은 사망하였고,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